낯선 도시에 내리면 나는 역 앞에서 먼저 한 바퀴를 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하지 않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빠져나가는 방향을 따라 걷는다. 그곳에 시장이 있고 식당이 있고 하루가 있다. 관광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도시의 맥박을 짚어 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빨리 도착하는 여행보다 기다림이 좋은 여행이 있다.
여행지에서 먹는 첫 끼는 그 도시의 인상을 좌우한다. 골목 끝의 작은 식당에서 먹은 국밥 한 그릇이 몇 년이 지나도 그 도시의 이름과 함께 떠오른다. 맛보다 중요한 것은 주문을 받던 이의 무심한 친절과 창가에 비치던 오후의 빛이다. 음식은 장소와 시간이 함께 차려진 기억이다.
기차역에는 두 종류의 표정이 있다. 떠나는 사람의 들뜬 얼굴과 돌아오는 사람의 느긋한 얼굴. 승강장 벤치에 앉아 그 표정들을 구경하는 것이 나는 좋다. 모든 사람이 어딘가로 가고 있고 그 방향이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안심시킨다. 나만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다.
돌아오는 길의 기차는 갈 때보다 짧게 느껴진다. 목적지가 아는 곳이라는 안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돌아오는 길이 더 좋다. 여행에서 본 것들이 차창 위로 겹쳐 떠오르고, 마음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장면들이 서서히 순서를 찾아간다. 여행은 돌아오는 동안 비로소 완성된다.
낯선 도시에서는 길을 묻는 일이 가장 좋은 대화다. 지도 앱이 있어도 일부러 가게 주인에게 방향을 묻는다. 손가락으로 길을 그려 주던 이의 사투리와 덧붙여 알려 준 맛집 이야기가 그 도시의 얼굴이 된다. 편리함이 놓치는 것들을 사람의 말이 채워 준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면 창밖 풍경을 한참 바라본다. 이 방에서 이틀 밤을 지낼 뿐인데도 이상하게 책상 위를 정리하고 물건을 제자리에 놓게 된다. 잠시 머무는 곳이라도 나만의 질서를 세우려는 마음은 어디를 가나 같다. 사람은 어디서든 집을 만들려는 존재인가 보다.
밤의 도시는 낮과 다른 말을 한다. 간판의 불빛이 켜지고 사람들의 걸음이 느려지면 그제야 도시의 본심이 드러나는 듯하다. 골목의 작은 술집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막차를 놓칠까 뛰어가는 발소리가 한 장면 안에 공존한다. 나는 그 소란 곁에서 조용히 혼자인 시간을 좋아한다.
여행에서 가장 자주 하는 일은 기다림이다. 기차를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리고 식당 앞에서 줄을 선다. 처음에는 낭비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기다림이 여행의 숨구멍임을 안다. 일정에 쫓기지 않고 멍하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틈이 있어야 풍경이 마음에 스며든다.
엽서를 사서 짧은 글을 적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사진을 보내지만 엽서에는 사진에 없는 것이 있었다. 우체통에 넣기까지의 망설임과 손으로 눌러 쓴 글씨의 떨림, 도착하기까지 걸린 며칠의 시간. 느리게 닿는 소식이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머물렀다는 것을 이제 와서 깨닫는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가방 바닥에서 영수증과 표 조각이 나온다. 구겨진 종이들을 펼쳐 놓고 날짜를 맞춰 보면 며칠간의 동선이 한눈에 보인다. 그 사소한 종이 조각들이 사진보다 정직한 기록이다. 나는 그것들을 한 권의 노트에 붙여 두고 가끔 꺼내 보며 다시 떠난다.
우리는 결국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낯선 곳에서 돌아본 일상은 처음과 조금 다르게 보인다. 늘 지나치던 골목이 새삼 다정하고 매일 마시던 물맛이 달다. 여행이 가르쳐 주는 가장 큰 것은 먼 곳의 풍경이 아니라 가까운 곳을 새로 보는 눈이다. 다음 여행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간다.
기차는 도착보다 이동을 기억하게 만드는 탈것이다. 창밖의 논과 강과 다리가 느리게 뒤로 밀려나는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이마를 창에 기대면 이상하게도 오래 묵은 생각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이동하는 시간이 곧 생각하는 시간이 되는 드문 장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