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곱 시의 골목은 소리로 먼저 열린다. 셔터가 올라가는 소리, 빗자루가 바닥을 쓰는 소리, 어디선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기예보. 그 소리들 사이를 지나가면 아직 이름을 모르는 동네가 조금씩 낯익어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첫 아침에 나는 늘 목적지 없이 한 시간쯤 걷는다.
그 두께가 곧 사람이 산 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길을 잃는 것도 걷기의 일부다. 지도 앱이 알려 주는 가장 빠른 길은 도착을 위한 길이고, 길을 잃고 들어선 골목은 만남을 위한 길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 서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돌아섰는데, 그날 걸은 길 중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다.
걷다 보면 생각이 걸음의 박자를 닮아 간다. 숨이 가쁜 오르막에서는 생각도 짧아지고, 평평한 길에서는 문장이 길어진다. 책상 앞에서 한 줄도 쓰지 못하던 문장이 신호등 앞에서 문득 풀리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나는 글이 막히면 일단 신발부터 신는다.
비 오는 날의 산책에는 특별한 맛이 있다.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바깥의 소음을 지워 주고, 젖은 아스팔트는 가로등 불빛을 길게 늘어뜨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산 아래로 숨어 걷고, 그래서 거리는 오히려 조용해진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오래 미뤄 둔 안부를 마음속으로 하나씩 꺼내 본다.
오래 걸으면 몸이 먼저 정직해진다. 발바닥이 아프다고 말하고, 허리가 쉬고 싶다고 말한다. 평소에는 듣지 않던 몸의 목소리를 걷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듣게 된다. 몸의 요구를 들어주며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는 십 분이 하루 중 가장 사치스러운 시간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동네 시장을 지날 때마다 나는 속도를 한 단계 더 늦춘다. 생선 가게 아주머니의 목소리와 과일 가게 앞의 달콤한 냄새, 철물점 앞에 쌓인 알록달록한 바구니들. 사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모든 가게가 열려 있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시장을 한 바퀴 도는 일이 나에게는 가장 좋은 여행이다.
계절은 걷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도착한다. 봄은 가로수 끝의 연둣빛으로, 여름은 그늘의 온도로, 가을은 바람의 결로, 겨울은 입김의 모양으로 찾아온다. 달력을 보지 않아도 나는 오늘이 어느 계절의 어디쯤인지 안다. 그 감각을 되찾는 것만으로도 걷기는 충분히 값진 일이다.
함께 걷는 사람이 있으면 침묵이 달라진다. 말이 끊겨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같은 속도로 걷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친구와 한강변을 걸으며 한 시간 동안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날이 있었다. 헤어질 때 친구가 말했다. 오늘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나도 그렇게 느꼈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 다른 길이다. 같은 거리를 반대로 걸으면 갈 때 보지 못한 것들이 나타난다. 간판의 뒷면, 건물의 다른 얼굴, 해가 기울며 길어진 그림자. 나가는 길에는 앞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뒤를 돌아본다는 말이 있는데, 걷기에서는 두 방향이 모두 풍경이 된다.
나는 걷는 동안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 찍는 순간 눈이 아니라 화면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대신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 바라본다. 그렇게 눈에 담은 장면은 선명하지는 않지만 오래간다. 흐릿하게 남은 기억 위에 나중에 문장이 얹히고, 그 문장이 이렇게 한 편의 글이 된다.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으면 하루의 소음이 한꺼번에 가라앉는다. 신발을 벗고 불을 켜며 나는 오늘 걸은 길을 천천히 되짚어 본다. 어디서 쉬었고 어디서 웃었는지, 무엇이 마음에 남았는지. 걷기는 끝났지만 쓰기는 이제 시작이다. 느린 하루의 끝에서 가장 빠르게 써지는 문장을 기다린다.
걷는다는 것은 가장 느린 속도로 세계를 읽는 일이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요약본에 가깝고, 두 발로 지나가는 골목은 원문에 가깝다. 같은 길이라도 걸어서 가면 담벼락의 균열과 창가의 화분, 빨래가 마르는 시간까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 사소한 것들이 한 도시의 문장을 이룬다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