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장을 줍는 사람

줍는 일은 쓰는 일보다 먼저 온다.

문장을 줍는 사람

칼럼은 의견을 주장하는 글이지만 나는 결론보다 질문을 남기려 한다. 독자가 글을 덮고 나서 자기 생각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여지를 두는 것이다. 정답을 건네는 글은 금세 잊히고 좋은 질문을 던진 글은 오래 남는다. 읽는 사람을 믿고 마지막 문장을 비워 두는 용기가 필요하다.

글쓰기를 배우는 가장 빠른 길은 아마도 잘 줍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마감은 쓰는 사람의 친구이면서 적이다. 마감이 없으면 글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고, 마감이 있으면 글은 언제나 서두른다.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 쓸 수 있는 만큼만 정직하게 쓰자고 다짐한다. 부족한 글이라도 세상에 내놓아야 비로소 고칠 수 있는 다음 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읽는 일과 쓰는 일은 하나의 호흡이다. 들이쉬듯 읽고 내쉬듯 쓴다. 읽기만 하면 숨이 차고 쓰기만 하면 숨이 마른다. 오늘도 한 문장을 읽고 한 문장을 쓰며 그 호흡을 이어 간다. 이 단순한 반복이 나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이 글쓰기를 계속하게 하는 이유다.

읽다가 멈추게 하는 문장이 있다. 눈이 그 문장 위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다시 앞 문단으로 되돌아간다. 왜 이 문장이 나를 붙드는지는 대개 바로 알지 못한다. 다만 어딘가에서 오래전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이렇게 이미 쓰여 있었다는 것을 몸이 먼저 안다.

나는 읽는 사람의 자리에서 글쓰기를 생각한다. 쓰는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하려 하고, 읽는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듣고 싶어 한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일이 글쓰기의 대부분이다. 독자가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은 대체로 쓰는 사람이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문장이다.

메모는 생각의 부스러기를 주워 담는 일이다. 버스 창가에서 떠오른 단어 하나, 대화 중에 스친 표현 하나를 휴대전화에 적어 둔다. 대부분은 다시 열어 보지 않지만 가끔 그중 하나가 몇 달 뒤 글의 첫 문장이 된다. 쓸모를 미리 따지지 않고 줍는 습관이 문장을 오래 살려 둔다.

초고는 부끄러운 것이 당연하다. 처음 쓴 글은 생각보다 어수선하고 성급하다. 그 부끄러움을 견디고 다음 날 다시 읽으며 한 줄씩 고치는 일이 쓰기의 절반이다. 완벽한 첫 문장을 기다리는 사람은 끝내 쓰지 못한다. 못난 초고가 있어야 다듬을 글이 생긴다는 것을 나는 늦게 배웠다.

고쳐 쓸 때는 소리 내어 읽는다. 눈으로 읽을 때는 보이지 않던 걸림이 입으로 읽으면 드러난다. 숨이 가쁜 문장은 너무 길고, 박자가 어긋난 문장은 군더더기가 있다. 문장은 결국 호흡의 단위라서 읽는 사람의 숨이 편해지도록 다듬는 것이 좋은 퇴고라고 믿는다.

좋은 독자는 천천히 읽는 사람이다. 속도를 내서 많이 읽는 것이 자랑이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 권을 오래 붙드는 쪽이 더 부럽다. 밑줄을 긋고 여백에 반문을 적고 며칠 뒤에 다시 펼쳐 보는 책은 결국 내 것이 된다. 읽은 책의 수보다 곱씹은 문장의 수가 사람을 만든다.

책장은 그 사람의 지도다. 누군가의 집에 가면 나는 책장 앞에서 오래 서성인다. 어떤 책을 꽂아 두었는지, 어떤 책은 닳도록 읽은 흔적이 있는지. 말로 하지 않은 취향과 고민이 책등에 적혀 있다. 그래서 책을 빌려주는 일은 나의 일부를 건네는 일처럼 조심스럽다.

독서 모임에서 배운 것은 같은 책을 읽어도 전혀 다른 책을 읽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위로를 받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불편했다고 한다. 서로의 독서를 듣다 보면 내가 놓친 문장들이 되살아난다. 혼자 읽는 즐거움과 함께 읽는 즐거움은 서로를 보충한다.

쓰기 전에 나는 먼저 듣는다. 사람들의 말투와 침묵, 우연히 엿들은 대화. 글은 책상에서만 나오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 길어 올려진다. 귀를 열어 둔 사람의 문장에는 다른 사람의 숨결이 섞여 있어서 읽을 때 따뜻하다. 잘 쓰기 위해 먼저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하린 읽는 일과 쓰는 일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는 칼럼니스트입니다. 회원의 글 전체 보기 →

게시일 2026.10.13

#글쓰기 #책읽기